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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ohol/Art

[술과 미술 04] 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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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작 (단원풍속화첩), 1745~1816

국립 중앙 박물관

단원 김홍도 (1745~?)

양반은 담뱃대를 물고 쉬고 있고,

일반 서민들은 일하기 바쁩니다.

농가에서 벼타작을 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 태어난 것이 정말 다행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빈부의 격차가 있고, 때로는 돈이 돈을 버는 비합리도 있지만,

그래도 성실히 사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때로는 역사의 흐름이 거꾸로 흐르기도 합니다만,

미래에도 서민들의 권리가 더 찾을 수 있는 사회로 발전해서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에서 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양반옆에 술병과 술잔이 보입니다.

좁은 입구의 병에 담긴 것은 쌀로 빚은 소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양반 옆에 바로 위치한 것이 일꾼들을 위한 술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되게 일하고 마시는 한잔 술은 정말 달콤할텐데,

일꾼들이 일하는 것을 감시하며 마시는 술이라니 화가 납니다.

한잔 술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지친 일상에 활력을 주는 술 한잔의 여유는 빈부의 격차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의하면 '소주는 몽골에서 왔는데 약으로나 쓸 뿐이지 함부로 마시면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은 잔을 소주잔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며,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소주는 예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다. 원나라 때에 처음 빚는 법이 알려졌다.'라고 하였다.

사실 소주는 어디서 언제 만들기 시작했는지 그 기원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알코올의 증류법은 원래 아랍의 명의인 아비케나가 발명했는데 몽골제국에서 이 증류법을 이용하여 소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명나라 학자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보면 소주는 원나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몽골제국은 아랍과 페르시아의 이슬람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는데 이때에 소주 증류법이 들어온 것이다. 그 당시에 아라비아에서는 소주를 '아라크(Araq)'라고 했다. 이것이 몽골에 들어와서는 아르히(архи)가 되는데 마유주라고 하는 아이락(аираг)과 연관되어 술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것을 중국어식으로 전사한 것이 '아라키(亞刺吉)'이다. 이것을 만주어에서는 '아얼키(亞兒吉)'라고 하였고, 인도 범어에서는 '아물타(Amrta)'라고 하였다. 결국 '아라키'라는 말은 아라비아말 '아라크(Araq)'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주는 칭기즈칸의 손자인 몽골제국의 쿠빌라이가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한반도에 많이 진출하였는데 개성과 전진기지가 있던 안동, 합포, 제주도 등지에서 많이 빚기 시작했다. 몽골이 고려와 함께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일본을 정벌할 때 안동을 병참기지로 만들면서 안동소주가 알려지게 되었다.

고려에 들어온 소주는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달리했다. 개성에서는 '아락주'라고 했고, 평북지방과 제주도에서는 '아랑주'라고 했다. 경상북도에서 '새주', '세주'라고도 했고 경남 진주에서는 '쇠주'라고 했다. 연천에서는 '아래지'라고 하였고 충주에서는 '알랭이'라고 불렀고 해남에서는 '효주'라고 불렸다.

'소주(燒酒)'라는 말은 고려 공민왕 때의 〈최영 장군전〉에 그 이름이 처음 보인다. 조선에 들어서는 1393년 12월에 태조의 맏아들 방우가 소주를 매일 마셔 병들어 죽었다고 적혀 있다. 고려시대 들어온 소주는 오랫동안 약용으로 음용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야 '술'로서 일반인들이 마시게 되었으며 '약소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슬처럼 받아내는 술이라고 하여 노주(露酒), 화주(火酒), 한주(汗酒), 기주(氣酒), 약소주(藥燒酎) 등으로도 불리었다. 소주(燒酎)의 '酎'는 세 번 고아 증류한 술이란 뜻으로 「酒」로 써도 된다.

조선 성종 때 사간(司諫) 조효동(趙孝同)이 '민가에서 소주를 음용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라며 소주 제조 금지령을 내리라고 상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반 가정에서는 솥에 숙성된 술을 넣고 시루를 얹은 후 그 안에 주발을 넣고 시루 위에 솥뚜껑을 거꾸로 덮는다. 솥에 불을 때면서 솥뚜껑의 물을 갈아주면 소주가 주발에 모이게 되는데 이 같은 원리로 흙으로 빚어 만든 소주 내리는 기구를 '는지'라고 한다. 증류장치가 두 부분으로 되어 있고 밑 부분은 아래가 넓고 위가 좁으며 위의 것은 그와 반대로 밑이 좁고 위가 넓은 '고리'는 위쪽에 나오는 주둥이가 있어 주발을 밖에 놓고 증류를 받았다. 이 고리를 흙으로 만든 것을 '토고리', 동으로 만든 것은 '동고리', 쇠로 만든 것은 '쇠고리'라 하는데 황해도, 충남, 전라도, 경상도에서는 토고리, 개성에서는 철고리, 함경도에서는 '는지'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고급주로 일부 특권층이 마시던 소주는 근대에 이르러 대중화 시대를 맞는다. 1905년 전에는 주로 서울 공덕동, 마포, 동막 부근에서 가내 공업 형태로 제조돼 서민에게도 팔렸다. 1924년 진로주식회사의 전신인 진천양조상회가 설립되는데 이때부터 소주가 대중화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주와 아르히[архи]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아시아편), 2009. 9. 16., 최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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