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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ovie

[영화] 왕 보다 더 쎈 권력을 가진 외척의 시대에 헌종과,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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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2018년 개봉

박희곤 감독

조승우, 박재상 역

지성, 흥선 대원군 역

김성균, 김병기 역

문채원, 초선 역

백윤식, 김좌근 역

이원근, 헌종 역

조선의 제24대왕 헌종시대의 영화입니다.

풍양조씨와 안동김씨의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가

극에 달해 조선의 명운이 다해가는 시기입니다.

영화상의 내용은 실제 역사를 기초로 하기는 하지만

왜곡이 심해 거의 창작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큰 맥락에서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디테일은 허구에 가깝습니다.

왕을 능멸하는 수준의 세도정치 묘사도 과한것 같고,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왕릉을 훼손하거나 절을 불태우는 설정도 의아한 수준입니다.

흥선 대원군이 칼싸움을 하는

장면은 애교로 봐줄 수 있습니다만,

후사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안동김씨 집안과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너무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영화가 역사를 고증하고

똑같이 재현하는게 잘 만든 건 아니겠지만,

상상의 나래가 현실성을 잃어버리고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된 느낌입니다.

스토리가 황당하니

조승우, 백윤식의 연기에도

몰입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리지만 왕권의 지엄함을 보여주는 결기가

허울뿐인 왕이었음을 깨닫고 절망으로

변하는 배우 이원근의 모습에는 짠한 마음이

자연스레 와닿았습니다.

헌종 (1827~1849)

조선의 제24대왕(재위 1834∼1849).

8세에 즉위하여 순조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수렴청정하였다.

휘(諱) 환(奐). 자 문응(文應). 호 원헌(元軒).

익종(翼宗:추존왕)의 아들로,어머니는 조만영(趙萬永)의 딸 신정왕후(神貞王后).

비는 김조근(金祖根)의 딸 효현왕후(孝顯王后).

계비는 홍재룡(洪在龍)의 딸 효정왕후(孝定王后).

1830년(순조 30) 왕세손에 책봉되고,

1834년 순조가 죽자 8세로 즉위하여

순조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金氏)가 수렴청정하였다.

순조 때 정권을 잡은 안동김씨(安東金氏)와

새로 등장한 풍양조씨(豐壤趙氏) 두 외척이 세력을 다투다가

한때 풍양조씨가 집권하였으나,

1846년 조만영이 죽자 정권은 다시 안동김씨에게로 넘어갔다.

1839년 많은 천주교 신자를 학살하고(己亥迫害),

천주교인의 적발 방법으로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적용하였다.

재위 기간에 이양선(異樣船)이 해안에 자주 나타나 민심의 동요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1841년 비로소 친정(親政)을 하였으나,

삼정(三政)의 문란과 국정의 혼란으로 민생고가 더욱 가중되었다.

《동국사략》 《삼조보감》등의 문헌이 찬수(撰修)되었고,

1837년 각 도에 제언(堤堰)을 수축하는 등 치적도 있었다.

후사는 없으며, 글씨에 능하였다.

능은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 내에 있는 경릉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헌종 [憲宗]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김좌근 (1797~1869)

조선 후기의 문신. 순조 ·헌종 ·철종 때 관직을 지내고,

1853~1863년 영의정에 세 번이나 보직되어

안동김씨의 중심인물로서 세도정치를 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영의정에서 물러나

실록총재관으로 《철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좌근 [金左根]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김병기 (1818~1875)

조선 후기 권신. 흥선대원군이 집정하자 한직에 머물다가,

다시 요직에 등용되어 좌찬성에 이르렀다.

안동김씨 세도가 한창일 때 초야에 있던 흥선대원군과 교유하여,

뒷날 안동김씨 일파가 대부분 제거되었을 때에도 관직에 계속 머무를 수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병기 [金炳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흥선대원군 (1820~1898)

조선 말의 왕족·정치가.

이름은 하응(昰應), 자는 시백(時佰), 호는 석파(石坡), 시호는 헌의(獻懿).

영조의 5대손이며 고종의 아버지.

20살에 흥선군(興宣君)에 봉해지고,

도총관(都摠管) 등 한직을 지내면서 안동김씨세도정치 밑에서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63년(철종 14) 후사 없이 철종이 죽자 조대비(趙大妃, 익종비(翼宗妃))에 의해

그의 둘째 아들 명복(命福, 고종(高宗))이 즉위하자

대원군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의 섭정을 맡게 되었다.

이로부터 10년간 대원군 집정시대를 맞아 안동김씨의 세도를 제거하고

당쟁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사색(四色, 남(南)·북(北)·노(老)·소(少))을

신분 · 계급 · 출생지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등용했으며,

부패관리를 적발 · 파직시켰다.

국가재정을 좀먹고 당쟁의 소굴이 되고 있는 서원을 47개만 남겨놓고 모두 철폐하고,

세제를 개혁하는 등 과감한 개혁정치를 추진하는 등

과감한 개혁정치를 추진함으로써

민생을 다소 안정시키고 국고도 충실하게 만들었다.

또한 <대전회통(大典會通)> <육전조례(六典條例)> 등의 법전을 편수, 간행하여

법률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정치기강을 수립하는 한편,

비변사(備邊司)를 폐지하고 의정부(議政府)와 삼군부(三軍府)를 두어

정권과 군권을 분리하는 등 군제를 개혁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흥선대원군 [興宣大院君] (한국근현대사사전, 한국사사전편찬회)

(스포 포함 내용 요약)

순조가 요절한 아들 효명세자의 능을 지관들의 제안으로

흉지에 조성하려 하자 박재상(조승우)이 반대합니다.

세도 정치세력은 박재상의 가족을 몰살하고,

능을 계획대로 조성합니다.

훗날 효명세자의 아들 헌종(이원근)이 왕이 되고,

흥선은 왕에게 고하여,

세도정치의 대장격인 김좌근(백윤식)이 효명세자를 흉지에 묻었고,

김좌근의 아버지가 명당에 묻혀 있다고 하자,

헌종은 김좌근을 벌하려 하지만,

오히려 김좌근의 기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흥선과 박재상이 인연을 맺고 친해져서

김좌근의 집에서 묘도를 훔치는데,

김좌근 조상의 묘가 모두 왕릉에 조성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병사들을 이끌고 김좌근을 체포하러 왕이 직접 나서지만,

병사들도 모두 김좌근의 편이고,

왕이 오히려 겁박당하고 임신중인 헌종의 아이 목숨마저

구걸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합니다.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는 땅이 있어

두명의 왕을 배출할 명당이 있음을 알게 되고,

김좌근의 아들 김병기(김성균)은 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묘를 조성해서 두명의 왕을 배출하고자 합니다.

흥선과 이 땅을 두고 최후의 결투를 벌이고,

결국 이 땅은 흥선이 차지하게 됩니다.

 

https://youtu.be/nO5nZ0akN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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