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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ovie

[영화 리뷰] 노량 : 죽음의 바다,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장군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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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죽음의 바다 Noryang: Deadly Sea

2023년 개봉

김한민 감독

김윤석, 이순신 역

백윤식, 시마즈 요시히로 역

정재영, 진린 역

허준호, 등자룡 역

김성규, 준사 역

이규형, 아리마 하루노부 역

​(스포 포함)

최민식의 명량, 박해일의 한산에 이어서

김윤석의 노량으로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삼부작이 완료되었습니다.

대규모 해상전투씬은 단연 압도적으로,

꼭 봐야 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임은 확실합니다.

조선 백성들을 살육하며

야만적인 전쟁을 벌인 일본인(왜놈)들이

아무런 피해보상이나 항복없이

유유히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그래도 이순신 장군이 막아서서

박살을 내버린 것은 우리 역사의 자랑이고,

후손으로서 당당함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분께 바치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다만 전편의 이야기에 대비해서

이번 영화의 아쉬운 점은...

이순신의 개인적인 고뇌에 대한 이야기 부족,

일본의 일방적인 침략이 준 고통등 전쟁의 의미에 대한 해석 부족,

실제와 다른 묘사가 실제보다 극적이지 않은 점등이

단점으로 보여

전에 선보인 두편에 비해서 조금은 실망스럽습니다.

이순신 개인에 대한 서사가 거의 없습니다.

더구나 이순신 장군이 너무나 과묵하여

대사조차 거의 없이 나와서

이순신의 인격이나 갈등에 대한

부분이 잘 설명되지 못합니다.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을 앞두고

지난 ~7년간의 스토리를 일일이 풀어내기에는

영화가 늘어질 수 있는 점을 인정하지만,

일본의 침략이 가져온 만행이나

조선의 피해에 대한 묘사가

너무 짧고 전쟁을 마치고 돌아가는 일본을

막아서며 양쪽의 인명피해만 늘리는

의미없는 전쟁이라는 명군과 왜군의 논리를

반박하는 서사마저 부족하여

실제 역사를 모르는 관객이 있다면

이순신의 복수극이 무고한 병사들의 인명을 앗아간 것인가로

오해할 여지마저 있다고 생각됩니다.

실제역사에서 포위중이던 순천왜성을 거짓공격하는 위장함선의 역할이

그냥 횃불만 밝히고 수비하는 형국으로 변형하여 묘사하였는데,

이 부분이 이순신 장군의 치밀함이나

일본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적인 측면이나

모두 원래 역사적 사실이 더 극적으로 생각됩니다.

마지막 실제 이순신이 총탄에 전사하기 전에

위협적인 총탄에 맞을 뻔한 부분이나

스스로 북을 치며 병력의 사기를 올리는 부분은

실제 역사와 다른 부분인데

오히려 극적 재미를 반감시킨다고 느껴집니다.

이순신의 죽음을 신파조로 그리지 않고

담담히 그려낸 부분은 괜찮은 전개라고 생각되지만

너무 천천히 느리게 전개되어

치열한 전투장면의 긴장감과 재미에서

약간의 지루함이 생겨 아쉬웠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모두가 아는 역사여서

노량해전의 자세한 설명을 발췌하여 정리하였습니다.

1598년(선조 31) 11월 19일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과 벌인 마지막 해전이다.

이 해전을 마지막으로 7년간 계속되었던 조선과 일본의 전쟁은 끝났고,

이순신도 이때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유재란으로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병사(病死) 소식을 듣고 철군하게 되었다.

이때 이순신은 명나라의 수사제독(水師提督) 진린(陳璘)과 함께 퇴로를 막기로 하였다.

그런데 철수하는 왜군에게 해로를 열어줄 것을 조건으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게서 뇌물을 받은 진린은

이순신에게 왜군의 퇴로를 차단하지 말자고 권고하였다.

이순신은 이에 강경하게 반대하여 진린을 설득한 후 함께 왜군을 치기로 하였다.

고니시는 경남 사천(泗川)에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와 남해의 소시라노부[宗調信]에게

구원을 청하여 전선 500여 척을 노량 앞바다에 집결시켰다.

그러자 이순신은 휘하 장병에게 진격 명령을 내려

노량 앞바다로 쳐들어가 적선 50여 척을 격파하고 200여 명의 적병을 죽였다.

이때 왜군은 이순신을 잡을 목적으로 그를 포위하려 하였으나

도리어 진린의 협공을 받아 관음포(觀音浦) 방면으로 후퇴하였다.

이순신은 적선의 퇴로를 막고 이를 공격하여 격파하는 동시에 적에게 포위된 진린도 구출하였다.

이 해전에서 400여 척의 전선을 격파당한 왜군은 남해 방면으로 도망쳤는데,

이순신은 이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추격하였다.

이 추격전에서 이순신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순신은 죽는 순간까지 자기의 죽음을 알리지 말고

추격을 계속하여 적을 격파하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조선군은 왜군을 격파한 후에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이 추격전에서 왜군은 다시 50여 척의 전선이 격파당하고

50여 척의 남은 배를 수습하여 도망쳤다.

이 전투에서는 이순신 외에도 명나라의 등자룡(鄧子龍), 조선 수군의 가리포첨사(加里浦僉使) 이영남(李英男), 낙안군수(樂安郡守) 방덕룡(方德龍), 흥양현감(興陽縣監) 고득장(高得蔣) 등이 전사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는 7년간 계속되었던 조선과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량해전 [露梁海戰]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1598년 12월 15일(음력 11월 18일) 늦은 오후

  • 이순신진린을 찾았고, 함께 출전했다.
  • 1598년 12월 19일 이덕형의 보고에 따르면, 이순신은 "연락선이 순천을 떠난지 4일이 되었으니 내일쯤 많은 군사가 반드시 이를 것이다. 먼저 나아가 싸우면 아마도 성공할 것이다"라 하였다. 진린은 소극적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이순신이 눈물 흘리며 청하자 함께 하기로 했다.
  • 1599년 2월 2일 이덕형의 보고에 따르면, 이순신은 "적의 구원병이 수일 내 당도할 것이니, 난 먼저 가서 요격하겠다" 하고, 진린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순신이 듣지 않고 단호히 나팔을 불며 배를 띄우자, 진린이 어쩔 수 없이 함께 따랐다고 했다.
  • 진린등자룡은 이순신이 선물한 판옥선 2척에 나눠 타고 출전했다. 그 뒤를 사선-호선들이 뒤따랐다.
  • 이순신은 함대를 셋으로 나눴다. 서쪽의 순천왜성을 위장공격하려는 극소수의 위장함대, 동쪽의 노량해협을 포위하려는 본함대/복병함대. 여수 좌수영에서 동쪽의 노량해협까지 노를 저어 하루 반절이 걸렸다.

1598년 12월 15일(음력 11월 18일) 늦은 밤

  • 해가 지고 한밤중, 이순신의 위장함대가 서쪽의 순천왜성을 무너뜨릴듯 포격하며 상륙할 것처럼 위장했다.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순신이 연락선이 나간걸 알자, 구원군이 오기 전에 순천왜성을 끝장내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에 절박해져 봉화 수준이 아니라 산을 불태우며 멀리 긴급함을 알렸다.
  • 창선도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이 불길을 보고 '조선 수군이 노량 쪽을 막지 않고 순천 쪽으로 갔다'고 해석하고 노량해협을 신속히 통과하기로 결정했다.

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오전 0~2시

  • 일본 함대가 노량에서 순천 방향으로 물의 흐름이 생겨날 때 창선도를 출발해 노량해협을 통과했다.
  • 일본 함대가 '해협을 통과한 뒤' 조선 복병 함대가 기습 포격하며 해전이 시작되었다. 조선 수군이 순천 쪽에 있으리라 생각한 일본 수군은 당황했다.
  • 수 척의 일본 함선이 격침될 쯤에, 시마즈는 복병 함대의 수가 적음을 파악하고 이들을 포위하려 했다.
  • 그러자 죽도 부근에 매복하던 명나라 함대가 합류했다. 진린의 판옥선은 도독기를 높이 올리고 북을 치며 진격했다. 등자룡의 판옥선은 불랑기포와 호준포를 쏘며 돌격했다.
  • 조선 복병 함대는 기습 외에도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지는 명나라 수군을 호위하는 임무 또한 있었기 때문에 명나라 함대의 움직임에 맞추어 공격하였다.
  • 시마즈는 이들과 전면전을 하며 시간을 소비하거나, 노량해협을 거슬러 되돌리기보단, 따돌리고 빨리 전진하기를 선택했다.

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오전 2~4시

  • 일본 함대가 관음포까지 전진했을 때(유인되었을 때), 이순신의 조선 수군 본 함대가 등장했다. 이로서 일본 함대는 3면이 포위된 형태가 되어 버렸다.
  • 조선 본 함대는 첨자찰진(삼각형의 돌격형)으로 경상우수사 이순신을 선봉장으로 어린진(전방이 두터운 방어형)으로 전진하던 일본 수군의 옆면에 등장해 파고 들어 지휘부 쪽을 위협하자, 지휘부의 수호를 최우선하는 일본 함대가 큰 혼란에 빠졌다.
  • 때마침 부는 북서풍을 이용해, 조명연합군이 화공(불화살, 신기전, 불 붙은 짚섬)까지 가했다.
  • 순천왜성 쪽의 고니시 유키나가도 위장함대에 속은 것을 알고 군영을 철수해 배를 출발시켰다.

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오전 4~6시

  • 일본의 선봉대가 불능에 빠졌을 무렵, 시마즈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명나라 수군 방향으로 포위망을 벗어나자고 총공세를 명령한다. 이에 아직 전력이 보존 된 중위-후위 병력들이 빠르게 돌진했다.
  • 때마침 등자룡의 판옥선이 명나라 아군이 잘못 쏜 포에 의해 불이 났다.일본 함대가 여기로 공격을 집중하자 결국 등자룡이 전사하고 판옥선은 불타버린다.
  • 이 여세를 몰아 일본군은 진린의 판옥선에도 달려들었으나, 이순신의 본 함대가 또 다시 진린을 구원
  • 명나라 수군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의 본 함대는 일본 수군 중앙을 파고들던 첨자찰진에서 점차 포위진으로 변경되었고, 이후 근접한 일본 함대에 포격을 가하며 포위망을 조이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야간이었기에 전함식별 및 조준이 어려워 평소보다 훨씬 짧은 거리에서 화포발사를 해야 했고, 근접전/백병전도 자주 발생했다.

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오전 6~8시

  • 명나라 수군 방향으로 돌파가 무산된 상황에서, 바닷물의 방향이 바뀌었다. 야간이라 방향을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 수군은 바뀐 물의 방향을 따르면 다시 노량해협을 지나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으나, 관음포 앞바다의 파도는 관음포 만으로 향하는 것이었고, 일본 수군은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
  • 조명연합군은 관음포 입구에 정렬해 입구를 철저히 봉쇄하고 포위섬멸하려 하고, 일본 수군 역시 죽기살기로 관음포를 다시 나가기 위해 최후의 발악으로 달려든다.
  • 순천왜성의 고니시는 해가 밝은 뒤 시마즈의 구원함대가 대패하는 것이 보이자 먼 바다로 도망쳤다.

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오전 8~10시

  • 일본 수군은 명나라+조선2군 방향이 아닌, 이번엔 조선1군 즉 이순신의 대장선 방향으로 탈출하려 한다.
  • 따라서 이순신의 대장선을 비롯 전라좌수군이 직접 돌파를 시도하는 선박들을 추격-포위한다. 일본군 선두의 시마즈 요시히로의 대장선(안택선)이 반파되어 작은 배로 옮겨타야 하는 등 큰 피해를 입고 위기에 처한다.
  • 일본군 후방의 타치바나 무네시게 군이 관음포를 또 빠져나와 조선1군의 후방을 찌르고 들어오면서 난전이 발생했다. 이 덕에 시마즈 요시히로도 탈출에 성공했다.
  • 이 난전으로 조선1군의 전라좌수영 다수 장수들이 전사했고, 최고지휘관 이순신 역시 전사했다.
  • 조선왕조실록이덕형은 "이순신이 전사하자 그 아들(이예)이 울려 하고 군사들은 당황하였다. 손문욱이 곁에 있다가 울음을 멈추게 하고 옷으로 시체를 가려놓고 북을 치며 진격하니, 모든 군사들이 이순신이 죽지 않다고 여겨 용기내어 공격했다"고 보고했다.
  • 조선왕조실록권율은 "손문욱이 통제사 이순신이 전사한 뒤 임기응변으로 잘 처리한 덕택에 죽음을 무릅쓰고 혈전하였습니다. 손문욱이 직접 갑판 위에 올라가 적의 형세를 두루 살피며 지휘하여 싸움을 독려하였는데 진 도독이 함몰을 면한 것도 우리 주사의 공이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 인조선조수정실록에 그의 조카 이완이 대신 지휘했다고 기록을 변경했다.
  • 여산 송씨 문중에선 은봉야사별록을 근거로 배에 있던 송희립이 독전했다며 주장을 하는데, 해당 사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임진왜란 시기 때 야사를 한데 모아 편찬한 거라 사실성과 신뢰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송희립의 후손들과 이를 다룬 몇몇 기고문을 제외하곤 해당 주장에 대해 학계에서 진지하게 거론되기는 켜녕 인지도 자체가 없다.

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오전 10~12시

  • 바다는 왜선 2백여척이 부서지고 시체, 판자, 무기, 갑옷이 뒤덮여 물이 흐르지 못하고 붉었다.
  • 일본군 50척 가량은 관음포에서 탈출에 성공해 외해로 도주했다.
  • 일본군 100척 가량은 관음포에서 탈출에 실패해 배를 버리고 남해도에 상륙, 도주했다. 이는 이틀 뒤 남해왜성 소탕전으로 이어진다.

출처: 나무위키

https://youtu.be/gXEpZpnImY8

 

 
 

 

한산: 용의 출현 리뷰는 아래 링크로

https://blog.naver.com/pebble3915/222846063512

 

[영화 리뷰] 한산 : 용의 출현, 이순신장군의 두번째 블록 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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